아름다운 북극광과 숨막히는 빙하로 유명한 아이슬란드가 여성의 천국이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얻었다.
여성이 생활하고 일하기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세계경제포럼(WEF)가 해마다 발표하는 성 격차 보고서에서 10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것.
인구 35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보건과 교육, 정치 및 경제 등의 여러 분야에서 성 평등이 체계적으로 구현되고 있어 다른 국가들의 모범이 된다.
아이슬란드, 양성평등 1위 국가
WEF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지수에서 성평등 비율이 전체 성별 격차에서 85% 이상이나 차지하며, 1위에 올랐다. 성별 격차 지수는 경제와 교육, 건강, 정치적 기준을 토대로 격차를 측정, 전체 순위가 매겨진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는 이와 관련, 여전히 양성평등 측면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양성 동등임금의 의무화, 성차별적 광고 금지 등의 정책 등 엄청난 진전을 이룬 것은 맞지만, 아직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 여전히 가정 폭력과 성희롱이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리의 이러한 발언에도 불구, 아이슬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양성평등적인 국가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1980년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의 대통령 당선은 아이슬란드에게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선출 국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으며, 임금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며 여성의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했다.
양성평등을 위한 투쟁
아이슬란드 역시 다른 나라들처럼 현재의 진보를 이루기까지에는 험난하고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과거 아이슬란드는 남성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여성은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여러 허드렛일을 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 남편이 오랫동안 집에서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여성은 육아와 집안일 외에도 사냥 및 농사, 건설 등의 여러 일들을 스스로 도맡아하며 가계 재정을 관리했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이런 지치고 피곤한 삶은 1975년까지 지속됐다. 그리고 두 가지의 문제를 깨닫게 됐다. 가장 먼저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과, 여성의 정치적 대표자가 부재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국회 의석을 차지한 여성의 수도 9명에 불과했다.
이후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양성평등을 추구하고 지향하는 일부 여성들이 페미니즘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가 행진에 참여한 것.
이 시기 수 만명의 여성이 맨해튼과 5번가에 모여 시위를 벌였으며 영국에서는 2만 여명의 여성이 행진에 참여했다. 아이슬란드 여성 인구의 무려 90%에 해당하는 인원이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투르디스 로아 토르할스도티르 역시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여성이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당시 10살이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거리에서 투쟁했던 것이 분명하게 기억난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여전히 그 곳에서 함께 했었던 군중들의 힘을 느낄 수 있다며, 여성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마비된다는 것은 큰 메시지가 됐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시위는 성공적이었다. 시위 후 많은 획기적인 사건들이 나타난 것으로, 핀보가도티르의 대통령 선출과 여성전당 설립, 육아휴직 입법 등 여러 정책이 발효됐다.
현재 아이슬란드 여성의 80%가 일을 하고 있다. 의무 쿼터제 도입으로 인해 상장 기업의 이사진 가운데 절반도 여성으로 구성된다. 국회 하원의원과 여성 대학생들도 41%를 차지한다. 2016년의 경우 의회에서 선출된 의원 중 48%가 여성이었다.
이같은 성별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한 제도는 친여성 정책으로, 보편적 양질의 육아 정책은 가장 대표적이다. 이 정책은 여성들이 사회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로, 육아 비용이 여전히 전 세계 여성의 노동 시장 및 정치 참여에 장애물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외에도 공동 육아 휴직과 평등한 보수, 여성에 대한 차별 금지 등은 주요한 역할을 한다.